카라바조 걸작 복원 공개 화가 카라바조 비극적인 생애

카라바조 걸작 복원 공개 화가 카라바조 비극적인 생애


5년 전 프랑스주택의 다락에서 발견된 이탈리아 거장 카라바조의 걸작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복원작업으로 공개됐습니다.


16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2014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한 주택 다락에서 보수공사를 하던 중 발견되었어요. 


성서 속 인물인 유디트가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검으로 치는 장면입니다. 


명암을 날카롭게 대비시키는 화풍으로 일반에 잘 알려져 있으며, 살인 등 폭력 사건에 연루된 삶을 살았다고 하네요.. 




가치가 약 1억 7천만 달러, 우리 돈 1천9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6월 정식 경매에 오르기 전 런던 콜나기 갤러리에서 공개됐어요..


오늘날 알려진 카라바조의 전작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이라고 합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복제품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비극 적인 삶을 살았군요.. 그래서 인지 몰라도 작품에도 많이 반영이 된건가 봐요.. 


그림보고 깜놀 참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어요.. 




화가 카라바조 일생



카라바조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연 화가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이를 작품에서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작품에서 극적인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인간 본연의 심리를 꿰뚫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려 했던 카라바조는 가톨릭 교회의 눈총을 받아요. 




16세기 뒷골목을 오가는 불량배, 거지, 매춘부 등을 그림 속에 끌어들여 예수로, 성자로, 막달라 마리아로 둔갑시켰어요. 




<성 마태의 소명>이라는 작품은 카라바조의 걸작 중의 하나로 예수님이 마태에게 그를 따르도록 영감을 주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며 <성 마태의 순교>와 나란히 현재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전시하고 있어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후작의 집사 겸 건축가였던 페르모 메리시의 아들로 밀라노 근처 카라바조에서 태어났어요.




13세에 화가의 길로 들어서 테네브리즘이라는 명암표현법의 창시자 암흑에 가깝도록 어둡게 처리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에 빛이 떨어지도록 하는 기법입니다. 


인물표현이 아닌 내면적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고 인간의 내면 표출에 대한 예술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탄생하게 된 기법이라고 합니다. 



<엠마우스에서의 만찬><묵주기도의 성모>몬테 델라 미세리코르디아 대성당에 있는 그림으로 그의 후기 걸작입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세례 요한의 참수><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




매우 감정적이고 성격이 불같아 사람들과 시비에 휘말리고 로마 시내를 돌아다닐 땐 항상 장검을 차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었다고 해요. 로마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살인을 저지릅니다. 


황령으로 내려온 수배령을 피해 나폴리, 시라큐사, 시칠리아, 팔레르모, 몰타 등을 떠돌아다니며 곳곳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삶을 연명합니다. 


몰타섬으로 먼저 도망치고 교회를 위해 <세례요한의 참수>를 그렸어요.  몰타수도회에서 정의의 기사로 인정받지만  로마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논쟁으로 다시 죄를 저지른 후 투옥됩니다. 




카라바조는 나폴리로 탈출합니다. 


참수에 대한 작품이 있는 이유는 누구든 그를 보면 목을 베어서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연관이 있다고 해요. 악몽을 꾸며 두려움에 떨었고, 그의 그림 속 참수된 얼굴들은 대부분 카라바조 자신이라고 하죠. 


사면을 요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시 로마로 가는 길에 불행히도 열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카라바조 걸작들은 <법열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메두사><나르시스><꽃바구니를 든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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