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 항거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아보자.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어요.. 


1918년 3월 17세에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해 4월 1일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합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민 5천명이 만세를 불렀어요..


 


탑골공원에서는 한용운이 일어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만세 삼창을 했어요.. 


18세이던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부모님을 잃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헌병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요,, 


일본은 펜치로 손톱을 뽑고 성고문을 하며 잔인한 고문을 해왔다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는 1920년 3월 1일 1주년을 기념해 옥중 만세 시위를 했고 이 일을 계기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석방 2일을 앞두고 9월 28일 유관순 열사는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행한 처참한 고문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유관순 열사가 석방되기 전해 죽게 한것이라는 설도 있어요.. 




유관순 열사는 "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고 했어요.. 


숨지기 직전에는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미국 뉴욕 타임스는 당시 한국 독립을 위해 싸운 10대 순교자라는 제목으로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기사를 썼다고 합니다. 




1851년 창사 이래 <뉴욕 타임스>의 부고 기사는 주로 백인 남성들에 관한 것이었고 이제 주목할 만한 여성들을 추가하려 한다고 했어요. 


1919년 봄, 한국의 독립을 위한 평화적 시위가 일어났을 때 유관순은 민족의 집단적 자유를 갈망하는 운동의 얼굴이 됐고 이화학당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고향 충남 천안에 독립선언서를 반입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고 했어요. 


1920년 9월28일 순국 직전에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사실도 있다고 해요. 


유관순의 집안이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했다고 소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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