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유관순이야기 실제 주인공 수원 기생 김향화

영화 항거 유관순이야기 실제 주인공 수원 기생 김향화


3월 29일 자해병원으로 정기검진 받으러 가다가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기생 김향화가 주도해 외쳤다고 해요.. 


다른 기생 33명과 함께 했다고 해요. 


조선 미인 도감을 통해 사진이 공개되었는 데요.. 당시 15세 - 23세였다고 해요. 


당시 수원기생이 만세를 부른 장소는 조선 정조때 지어진 화성행궁이라고 하네요.. 




일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곳에  조선왕조의 권위와 상징을 무너뜨릴려고 이곳에 자혜의원을 설치합니다. 


기생들의 성병검사를 정기적인 성병검사를 했다고 해요.. 


일본은 궁중에 있던 관기와 궁녀들도 궁에서 내쫒게 되요.


장한이라는 자료는 일제 시대 기생들이 쓴 책으로 나라에 대한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해요.. 



1919 1월 21일 고종 붕어가 알려지고 건강상 이상이 없던 고종이 독살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돌아요.. 




많은 시민이 고종이 지냈던 덕수궁 앞에 몰려들었고 이때 수원기생들도 함께 했다고 해요.. 


수원지역에서도 3.1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방화수류정을 시작으로 시작되었고 3월 16 일 수원 장날에 다시 만세운동을 합니다. 하지만 일제 무력에 잡힌 사람들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합니다. 


김향화는 1897년에 태어나 3.1 운동 때 봉수당 앞에서 만세운동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지위가 관기에서 창기로 하락합니다. 


3월 29일 토요일 정기적 건강검진을 받는날 만세운동을 하고 체포가 되어 경찰서에 끌려 갑니다. 재판을 받고 6개월 형을 받고 형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고 해요.. 1934년에 이름을 우순으로 바꾸고 기생활동을 안하고 1950년에 사망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생 33명의 만세운동에 일제는 수원 내 경찰병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했어요. 이를 목격한 학생, 상인은 노동자 300명은 함께 거리에 나와 기생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만세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주모자로 체포된 후 대나무 꼬챙이로 손톰 밑을 파는 고문을 당했다고해요.. 혼자 했다며 2개월간 끔직한 고문을 당하고 독방에 감금당해요. 


일본인이 기록한 화보집에는 김향화에 대해 검무, 승무, 시조 등 막히는 바가 없고 갸름한 듯 그 얼굴에 목소리는 구슬프며 맵시가 좋고 성격이 순하고 귀엽더라고 적혀 있었다고 해요.. 


1919년 3월 25일 매일신보에 진주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벌였고 기생집을 찾은 일본인들에게는 냉랭하기가 얼음장 같고 웃지도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유령들이 저승에서 술을 마시는 기분이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해주 기생들이 재판장에게 한말은 우리는 일본 기생과 다르다. 내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한 사람, 한여자란 말이다. 


많은 기생분들이 독립만세 운동을 했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9년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았으나 후손을 찾을 수 없어 독립유공 훈장은 수원 박물관에 보관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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